Journey, JH Park

Think, Write, Invest, Optimize.

원래 급할 수록 다른 일이 하고 싶기 마련

내일 점심까지 제출할 서면과 내일 밤까지 마무리되어야 할 메모랜덤이 있지만 글을 써본다.

나는 왜 그녀와 결혼했을까?

당시 나는 로펌 2년 차를 마쳐갈 때 쯤 한국 나이 31세였고 내 외모에 자신이 있었다. 거짓말 같지만 나는 서울대로스쿨 4기 졸업생인데, 당시 잘생긴 김씨, 이씨 및 박씨 남학생 3명을 ‘김이박’이라 했는데 내가 그 중 박이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많은 일들이, 상상을 넘어 일어나기 마련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와이프는 대학교 3학년을 마쳐 갈 즈음 겨울이었다. 와이프는 원래 반포에 살다가 이태원으로 이사 온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는데, 그 때부터 ‘프로스트’라는 맥주집을 자주 다녔고, 자칭 본인을 ‘프통령'(프로스트 대통령)이라고 농담삼아 말했다. 어쨋든.

당시 나는 외로웠다. 그리고 얼굴이 예쁜 여자를 찾고 있었는데, 와이프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이태원 맥주 집에서 용기를 내어 처음 보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고 번호를 받지 못하자 명함을 주었다. 연락이 왔고 다시 이태원에서 만났다. 내가 다니는 법무법인이 법조계가 아니면 사실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와이프는 양가 할아버지가 다 법조계셔서 내가 다니던 법무법인 이름도 익히 들었던 터다. 그래서 내 명함을 보고 이상한 사람은 아니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9살 차이라는 것은 2번째 이자카야에서 만났을 때 알았다. 와이프가 노안이긴 하다.

여러 대화를 나눴고 어쩌다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서로 부담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 데려다 주었고, 차에서 내릴 때 와이프가 했던 한 마디가 당시 매주 결혼정보업체에서 주선해준 여자들을 만날 때, 혹은 소개팅에서 여자를 만날 때까지 느껴 보지 못한 따듯함을 느끼게 해줬다.

그 말 한 마디에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예감은 옳았다.

나와는 배경이 무척 다른 와이프는 무척 밝았다. 그래서 나는 농담 삼아 이 여자가 머리를 다쳐서 도파민이 과잉분비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어쨋든 결론은, 내가 와이프와 결혼한 이유는 아무리 돌이켜 봐도 지금 와이프가 아무도 할 수 없던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가며 친척 집을 전전하며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상경하여 어렵게 생활하며 여기저기 얼룩지고 더 구겨질 수 없을만큼 짓구겨져 버린 내 마음을 그냥 활짝 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내 마음의 구김살이 하나씩 펴짐을 느낄 때 이 여자와 결혼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와이프와 보내는 시간은 즐거웠고, 와이프는 예뻤다. 지금도 이쁘다.

솔직히 결혼 과정이 너무 험난하고 요동쳤기 때문에 쓰려면 쓸 글은 많지만 다시 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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