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JH Park

Think, Write, Invest, Optimize.

  • 나 아닌 타인이 세운 기준과 규칙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했는지 좌표만 찍기에는, “알 수 없지만 시작해버렸고 끝을 향해 치닫는 이 삶”이, 어쩌면 훨씬 더 값진 ‘감정’과 ‘경험’을 위한 ‘기회’는 아닐까 싶다. 내가 내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 여부는 내 결단에 달려 있다. 진짜 내 자신이 되어 마음껏 살아보고 싶다. 두려움과 위선 속에 변명만 일삼고 눈감은 장님처럼은 결코 살고 싶지 않다. 오롯이 내가 정립한 ‘기준’, 그리고 내가 부여한 ‘의미’가 가로지르는 무대 위에서 타인이 아닌 나로서 살고 싶다. 거짓으로 날 위로하지 않겠다.

    • 에너지는 항상 ‘최소 저항의 경로’를 따라 흐른다. 최소 저항의 경로가 이끄는 방향이 아닌 한 인생에서 시도하는 그 어떤 변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일단 ‘구조’가 존재하면 에너지는 최소 저항의 경로를 따라서 구조를 통과한다. 즉, 에너지는 가장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인다. 우리는 최소 저항의 경로를 따라 움직인 끝에 인생에서 ‘지금’ ‘이 곳’에 있다.
    • 3가지 중요한 통찰. 첫째, 우리는 최소 저항의 경로를 선택하여 삶을 영위한다. 우리는 강물과 같다. 최소 저항의 경로를 선택하는 법칙은 ‘자연’, 그리고 ‘인생’의 법칙이다. 둘째, 인생의 기본 ‘구조’가 최소 저항의 경로를 결정한다. ‘강 바닥’이 변하지 않는 한 물은 자연이 택한 경로를 따라 늘 흐르던 대로 흘러간다. 삶 역시 ‘구조’가 바뀌지 않고 유지되는 한, 십중팔구 지금껏 따라왔던 방향과 똑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셋째, 삶읜 ‘근본적 기본 구조’는 바꿀 수 있다. 엔지니어가 강바닥 지형을 변화시켜 강물의 줄기를 휘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 있듯이, 우리 인생 역시 기본 구조를 바꾸어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창조할 수 있다.
    • ‘구조’란 ‘사물의 근본적 부분’, 그리고 ‘각각의 부분’이 ‘상호 관계’속에서 혹은 ‘전체와 관련’하여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의미한다. 모든 ‘구조’는 서로 관련된 ‘요소’로 ‘구성’되며, 각 요소들이 ‘상호작용’할 때 ‘경향’, 즉 움직임을 추동하는 경향성이 발생한다.
    • ‘구조’가 ‘행동’을 ‘결정’한다. 인생에서 ‘구조’란 ‘원하는 것’, ‘신념’, ‘추론’, ‘포부’, ‘객관적 현실’이 혼합되어 이루어진다.
    • ‘창조 프로세스’의 ‘개요’. 1) 창조하고자하는 ‘결과’를 ‘상상’하라. 크리에이터들은 ‘끝’에서 시작한다. 원하는 것을 창조하려면, 우선 무엇을 우구하는지, 무엇을 존재로 구현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 자체가 ‘기술’이다. 2) ‘지금 가진 것’을 ‘파악’하라.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자신만의 창조 프로세스에 숙달되면 ‘진실’을 받아들이는 힘이 커진다. 그 때가 되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싶어 하게 될 것이다. 3) 행동하라. 모든 행동은 최종 결과물의 창조에 도움이 된다. 그 자체로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효과가 없는 것’을 학습하는 배움의 프로세스가 창조다. 4) 창조 프로세의 리듬 ‘발아’, ‘동화’, ‘완성’을 배워라. 5) ‘모멘텀’을 창조하라. 새로운 창조 하나 하나가 자신만의 창조 프로세스에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 주어 원하는 것을 그려낼 수 있는 능력과 결과물을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증대시킨다.
    • 발아. ‘창조하고 싶은 결과의 선택’. 선택은 연습이 필요하다. ‘선택’은 두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원하는 결과의 구상, 즉 창조하고 싶은 것의 선명한 ‘비전’을 가진다. 둘째, ‘나는 ~을 선택한다’라는 말을 실제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선택을 공식화 한다. 선택을 언어적 형태로 구체화하여 비전에 좀더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공식적 선택은 발아의 씨앗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모든 에너지를 원하는 대로 배치하여 선택을 향해 나아가게 할 때가 되었다는 선언’이다.
    • ‘일차 선택’은 주요 결과에 대한 선택이다. 일차 선택은 원하는 결과 그 자체에 관한 것, 그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다. 일차 선택은 거쳐 가는 단계가 아니라 궁극적 목적으로 기능한다. 어떠한 선택이 추가적 결과를 불러오도록 설계된 것이 아닐 때 그것 자체가 결과이기 때문에 일차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일차로 정한 결과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일차 선택을 공식화하면 발아 에너지가 생성되고, 새로운 전략으로서 일차 선택을 지원하는 부차적 선택들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이러한 전략적 부차적 선택들은 ‘행동’과 창조하고자 하는 ‘결과’를 연결해 주어, 각 단계에서 일차 선택의 완전한 실현을 향한 기반을 만들고 모멘텀을 구축한다.
    • ‘부차적 선택’은 일차 결과를 향해 한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택이다. 일차 선택이 명확해야만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할 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고, 어느 지점에서도 자기 자신과 다툴 필요가 없게 된다. ‘일차 선택’을 알게 되면, 그 달성을 위해서 필요한 ‘부차적 선택’이 무엇이든 명확해지고 선택하기 쉬워진다. 부차적 선택은 언제나 일차적 선택에 종속된다. 따라서 일차 선택의 맥락과 상관없는 것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부차적 선택을 하는 것을 결코 무엇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차 선택을 뒷받침하는 실질적 선택이므로, 그 자체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전략적으로 부차적 선택을 하는 것이 매우 강력한 힘이 된다는 뜻이다.
    • ‘단기 요구’에 사로 잡히지 않고 ‘장기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방법은 간단한다. ‘내 인생에서 창조하고 싶은 결과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러면 장기 목표에 필요한 ‘행동’을 ‘선택’하기가 더 쉬워지고, ‘부차적 선택’이 더 ‘선명’해지며, ‘일시적 충돌’이 개입해도 인생의 방향에서 멀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일차 선택’을 정하고, 일차 선택을 뒷받침하는 ‘부차적 선택’을 형성하고 나면, 장기 목표와 ‘목표를 흐뜨리를 수 있는’ 단기 요구를 ‘구별’하는 능력이 생긴다.
    • ‘근본적 선택’은 ‘기본적 삶의 지향’, ‘기본적 존재 상태’를 결정하는 선택이다. 근본적 선택은 일차 선택 및 부차적 선택이 의지하는 토대다. ‘근본적 선택’은 인생의 ‘구조’를 창조하는 것이다. 최소 저항의 경로는 ‘근본적 선택’이 창조한 ‘구조’에 맞추어 이를 채우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근본적 선택은 ‘자유’롭고, ‘건강’하며,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한 선택이다. 인생의 환경을 선택하고 창조하며, 무제한의 경험을 하는 것.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영혼의 측면에서 건강하는 것, 스스로의 본질적 본성과 도덕성에 따라 인생의 개별적이고 고유한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근본적 선택을 하는 방법은 ‘진심으로 소망’하는 것이다. 첫째, 나는 내 인생에서 지배적인 창조력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둘째, 나는 내 자신에게 충실해지는 것을 선택한다. 셋째, 나는 건강해지는 것을 선택한다. 넷째, 나는 자유로워지는 것을 선택한다. 이 4가지 선택을 하게 되면 ‘시간’이 우리 편에 서게 된다. 인생의 ‘구조’적 ‘경향성’이 이러한 선택들을 충족시키도록 ‘설계’되기 때문이다.
    • 자신의 인생에서 지배적 창조력이 되겠다는 ‘근본적 선택’은 삶의 질 전체를 극적으로 바꾼다. 이 근본적 선택으로 인생의 모든 순간에 인간 정신의 진정한 표현을 위한 잠재력이 깃들게 된다. 그리하여 삶의 매 순간 훌륭하고 멋진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인생의 모든 국면에 더 깊이 관여하게 된다.
    • 현 단계의 ‘동화’를 위한 강력한 방법 중 하나는 준비가 덜 되었다는 느낌을 무릅쓰고라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자신의 현 단계에 관해 스스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어떻게든 ‘통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 모멘텀(추진력). 성장 또는 학습 과정 초기 단계에서 더 많이 동화되면 다음 단계의 동화를 더 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단계들을 동화하고 나면 모멘텀이 구축되어 훨씬 더 진전된 단계들의 동화가 가능해진다. 즉, 동화는 ‘기하급수적 성장’을 이루어낸다. 한 가지를 동화하면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동화하는 것이 쉬워진다. 창조 지향성에서 일단 자신의 창조 프로세스를 동화시키켠 전반적으로 삶의 숙달성이 높아지고 보다 자연스럽고 쉽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창조할 수 있게 된다.
    • 동화 프로세스는 ‘쌓아 가는 것’이다. 이 ‘축적 과정’은 일정한 기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동화에서는 변화가 일시적이지 않고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 원칙: “제대로 사서 보유한다.” 금융의 역사에서 “제대로 사서 보유하라” 원칙만큼 유용한 조언은 없다.주식을 사서 한쪽으로 치워두고 잊어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비생산적으로 사고 파는 행위를 경계하라는 뜻이다. 
    • 1971년 기준으로 1932년과 비교해 시장가격이 100배 이상 뛴 미국 주식은 360개 이상이다. 해당 기간 중 최고가가 아니라 1971년 가격 기준이다. 기회가 단 한 번만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What nonsense to say that opportunity knoks but once”). 기회는 25년 넘게 모든 사람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다. 투자에서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고위험을 감수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주식을 살 필요는 없다. 대부분 한 번쯤은 돈을 버는 주식을 가져본 적이 있다. 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고 보유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수백 개 종목을 1971년 가격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산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손에 쥔 큰 보상을 실제로 누릴 만큼 오랫동안 보유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것이 ‘투자의 비극’이다. 
    • 적게 요구하면 적게 얻는다. 많이 요구하면 많이 얻는다. 그러나 너무 많이 요구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인간의 욕심은 이상한데가 있어서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다.  투자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발견하는 통찰(Vision), 확신을 가지고 자금을 투입하는 실행력(Courage), 100배가 될 때까지, 때로는 50% 이상의 폭락을 견디며 보유하는 인내심(Patience) 이 중 가장 드문 덕목은 인내심이다. 많은 투자자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시장이 기회를 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원대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단기 차익 실현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크게 구해야 크게 얻는다. 평범한 투자자들이 거부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욕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적은 것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부는 옳은 주식을 싸게 사서 끝까지 보유함으로써 이루어진다(Fortunes are made by buying right and holding on). 
    • 현명한 전문가는 타이밍 대신 종목을 선정하는데 집중한다. 투자자 대부분은 시장이 상승할지 하락할지 타이밍을 판단할 때보다 어떤 주식을 매수하거나 매도할지 결정할 때 감정 개입이 훨씬 덜하다. 
    • 남들이 공포로 외면할 때가 다이아몬드를 살 기회다. 기회는 한 번이 아니라 계속 찾아온다. 공포의 시기에 담대하라. 극단적 불황과 위기 상황일수록 역설적으로 엄청난 투자 기회가 숨어 있다. 투자자가 치러야 할 가장 큰 비용은 공포다. 훌륭한 기업을 헐값에 팔게 만드는 시장의 공포를 이겨내는 것이 부의 원천이다. 
    • 언제 사야할지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살지다. 시장을 예측하려 애쓰기보다는 한 발 앞서 뛰어난 기업을 선별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큰 부를 안겨준다. 성공한 주식의 경우 회사의 이익을 계속 증가하는 한 절대 팔지 말아야 한다. 성공적인 주식 투자의 기회는 생각보다 흔하며, 문제는 투자자들이 그것을 오래 끌고 가지 못하는 데 있다. 피터 린치 역시 “막상 10루타 주식을 갖고 있어도 주가가 반토막 나면 견디지 못하고 판다.”며 시장 예측보다 기업 펀더멘털에 집중해 오래 버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 25년 후 100배 수익을 거두려면 배당금을 제외하고 주가가 연평균 20% 이상 상승해야 한다. 같은 주식을 20년 뒤에 파는 사람은 세금과 중개수수료를 제외하고 40배를 번다. 주가 상승률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나머지 60배 수익은 마지막 5년 동안 발생한다. 
    • 정말로 매력적인 주식이라고 생각한다면 시장가격에 매수해야 한다. 그 후 주가가 하락할 경우 여유가 있다면 더 매수하는 것이 좋다. 투자금의 40배를 벌든 60배를 벌든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기회를 완전 놓칠 때가 진짜 문제다. “주식시장에서는 황소도 돈을 벌고 곰도 돈을 버리만 돼지는 그렇지 못한다.”
    • 주식 시장에서 큰 수익을 추구한다면 “모든 매도는 곧 실수의 자백이다(For the true fortune-seeker, every sale is a confession of error)”. 주식시장에서 단기 매매로 기회를 잃고 차익실현으로 착각한다면 부를 쌓을 수 없다. 제대로 사서 보유하는 것과 비교하면 매도는 실수이고 기회 상실이다. 강세장에서 매도는 대개 이익을 실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돈을 벌었다고 자신을 속여서는 안된다. 실제로는 더 큰 기회를 놓친 것이고 자본이득세를 내야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투자자들은 주식투자에 따른 위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 매수하지 않거나 보유한 주식을 너무 빨리 파는 데 따른 비용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 일찍팔면 생각보다 큰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 
    • 좋은 자산을 가진 기업이 적자를 기록 중이고 실적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할인된 가격에 그 자산을 매수할 기회가 이따금 주어진다. 
    • 1932년부터 1955년까지 총 24년 가운데 22년 동안 그 해의 고점에 옥시덴탈을 매수했더라도 1971년에는 각각의 매수에서 100배 이상의 수익을 거두었을 것이다. 물밑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1956년 주가가 급등을 시작하기 전까지 12년 동안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증권거래소에서 옥시덴탈 주식이 120만 주 이상 거래되었다. 
    • 결국 주식을 매수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것이다. 이미 보고된 실적과 배당금 등 과거는 팔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과거’는 ‘현재 소유자’가 이미 가졌고 경험했으며 누렸다. 주식을 가진 사람이 팔 수 있는 것은 ‘미지의 미래’일 뿐이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투자에서 다루는 것은 ‘확률’과 ‘가능성’이지, ‘확신’이 아니다. ‘위험’은 자본이득을 추구하는 투자자가 필수적으로 치러야 하는 비용이고, 그 덕분에 순이익이 존재한다. 어느 시장에서든 투자자는 ‘미지의 미래’를 살 수 있을 뿐이다. 
    • ‘인플레이션’은 가장 잔인한 형태의 ‘세금’이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지금까지 알려진 다양한 문명의 역사에서 화폐 가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한 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 ‘이자’는 ‘시간의 가격’이다. 이자는 ‘미래’에 지불 가능한 것을 ‘현재’ 소유하거나 실행하는데 드는 비용이다. 따라서 빌린 돈으로 구입한 모든 것은 현금으로 구입한 것보다 더 비싸다. 많은 사람이 빚으로 무너졌고 많은 사람이 빌린 돈으로 부를 일구었다. 그 차이는 오로지 빌린 시간을 수익성 있게 사용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나는 1954년에 병원비를 지불하기 위해 폴라로이드 주식 150주를 7,415.97달러에 팔았다. 매도 확인서를 첨부한다. 병원비를 연 8% 복리로 빌렸다면 1954년의 진료비 7,500달러는 1971년 말에 2만 7,750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이 되었을 것이다. 타고난 데다 후천적으로 배운 조심스러운 성격 덕분에 나는 빚을 지지 않았다. 정말로 신중한 결정이었을까? 폴라로이드 주식 150주는 1971년 7,200주가 되었고 시가는 84만 3,300닭러에 달한다. 그 때 빚을 지지 않으려고 한 탓에 80만 달러 이상의 대가를  치렀다. 1954년에 병원비를 연 30% 복리로 빌렸다고 가정해도 1971년 폴라로이드 주식의 가치는 빚보다 20만 달러 더 컸을 것이다. 100배로 오른 수백 개의 종목을 초기에 산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빚을 갚기 위해 주식을 팔았을까? 조용한 한여름 밤, 그들의 탄식이 들린다. 돈을 빌릴 때는 돈을 주고 사는 ‘시간’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청년이 교육받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것은 일반적으로 매우 좋은 일이다.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한 도구를 구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출은 필요한 수단과 장비를 마련할 돈이 모일 때까지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고 필요한 것을 빌려, 앞선 세대가 멈춘 지점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젊은 세대든 나이 든 세대든 마찬가지다. 
    • 투자업계에서 직업상 직면하는 위험 가운데 특히 심각한 위험은 ‘무엇이든 합리화하는 비범한 능력’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평범한 무능력’에서 비롯된다. 
    • 결국 실용적 상상력, 즉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얼마 후 자신에게 중요해질 문제를 상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 젊은의 가장 큰 자산은 ‘시간’이다. 40년 이라는 긴 기간을 투자할 수 있다면 연평균 12.2% 수익률만으로도 자산을 100배로 불릴 수 있다. 

  • 복리의 법칙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은 성과가 보이지 않음에도 계속 노력을 일관적으로 지속해야 하는 구간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상상’으로 ‘보이는 것’을 ‘인내’해야 한다. 그렇게 ‘임계점’을 넘어서야만 한다. 그 과정의 지루함과 불확실함에 익숙해져야 한다. 멈추지 않아야만 시간을 내 편으로 삼을 수 있다. 시간은 언제나 정직하고 정확하다. 시간이 내편이 아니라 적이 되면 결코 이길 수 없다.

    “Stay the Course.” 흔들리지 말고 계속 게임에 머물러야 한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5년을 바라봤고 1,825일 중 약 650일이 지났다. 그리고 1,175일이 남았다. 받아들일 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멈추진 말자. 정직하게 대가를 치르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의 나를 둘러싼 껍질을 깨뜨려야 한다. 그 과정에 고통이 수반된다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근육도 찢어지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고통과 성찰은 반드시 필요하다.

    3차원에 묶여 사는 인간이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 ‘상상력’. 때론 미래의 시점에 서서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서서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질문하는 것과 ‘미래’에 서서 과거로서 지금을 바라보는 것은 방향만 다를 뿐이지만 차이가 크다.

    진화는 가차없고 냉혹하며, 뒤처지는 것을 멸종시킴으로써 가르침을 준다. 우주 모든 것은 진화의 법칙을 따른다.

    생각의 험로를 지나 몇번을 썼다 지워야 겨우 활자로 구체화시킬 수 있다. 글뿐이겠는가. 이 시기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시행착오로 보이는 순간 역시 종점으로 내닫기 위해 반드시 거쳤어야 할 유일한 길이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데이터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노이즈는 차단한다.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것으로부터 내 자신을 차단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 자식 키우기 시작하니, 영어학원부터 몇 살때부터 의대를 준비해야 한다, 대치동은 최대한 일찍 가야한다, 등등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오늘은 아들을 처가에 맡기면서 학력고사 시절을 거치고 당시 입결 최고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시고 교수로 계신 와이프 이모분과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대치동 교육에 대하여 잘 아는 와이프 사촌도 함께 했다.

    대한민국 사교육은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그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어쩌면 K-POP보다 경쟁력 있는 컨텐츠가 아닐까 싶다. 이 나라 교육열이 보통 뜨거운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결과로 증명한 진짜들만 살아남는다고 치면 대한민국 사교육은 ‘시험’ 준비에 최적화, 최고 효과, 최고 효율을 달성하는 시스템이다. 비단 이 시스템의 효율성은 대입 입시뿐만 아니라 넓게는 각종 자격증 시험에서도 효능을 증명한다. 나 역시 회계사 2차 시험을 준비하면서 직접 당시 종로에 있던 가장 큰 회계사 입시전문 학원에서 실강을 들었는데, 내가 왜 진작 학원에 의존하지 않았나 싶었을 정도였다. 그렇다.

    내 아들이 1) 책을 많이 읽고, 2) ‘결’이 다른 다양한 ‘집단’과 ‘사람’, 그리고 ‘세계’를 경험해보아서 ‘동질된 좁은 집단’의 틀에 갇혀서 그것을 ‘규범’인양 착각하지 않기를, 3) 그 다양한 세상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고, 또 자기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를 바라고, 4) 나이가 들수록 자기 자신의 행동, 생각, 몸, 뇌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5) 그 여정 속에서 자기 자신만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의미’를 찾고 그 의미에 ‘시간’과 ‘행동’을 전념하길 바란다.

    이런 것은 학원이 가르쳐줄 수 없다. 정해진 시간 내 오지선다에서 답을 풀거나 정형화되 몇 개의 개념을 사고력 테스트라고 하며 답을 도출하도록 하는 그런 ‘기술’ 테스트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형화된 시험에서 우수한 결과는, 그 ‘시험’과 학생의 ‘수험적합성’, 그리고 수험생활에서 ‘인내’ 또는 ‘자기절제력’을 얼마나 발휘했는지 여부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그 이상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삶은 너무 복잡하고 훨씬 깊고 어렵다.

  • 먼저 로스쿨을 가게 된 이유

    회계사시험에 합격 후 삼일회계법인에 지원해서 입사계약을 적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수백 명이 커다란 강당같은 곳에서 입사계약서를 앞줄부터 뒷줄로 넘기면서 받아서 기계적으로 사인했던 것, 기억이 맞다면 당시 기준으로도 대기업 초봉보다 적은 금액이었다.

    회계사 시험 준비는 내 적성과 맞지 않아 무척 힘들었다. 수험기간이 길어지면 돈이 더 든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초조해서인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냥 돈을 더 주는 곳이면 어디든 괜찮았던 시절이다. 몇년 더 공부해도 초봉이 3배 이상 오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입사계약서에 사인하니 특정 은행 특정 지점을 지목해서 이 곳에 가면 신용대출 1억 3,0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leverage를 활용할 수 있게 된 시점이다.

    회계사 시험 준비 시절 1타 강사면서 학부 선배였던 분이 내게 로스쿨을 권유했고,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니 마침 로스쿨에 진학해 3년 공부할 만한 신용이 생겼다. 그리고 대형로펌에 취직하면 당시 회계사 초봉보다 3배 이상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난 신용대출 이자율보다 내 자신의 성장률이 높으면, 이자는 고정된 비용이고 내 성장은 나 하기 나름이라 생각하고 로스쿨을 지원했다. 낮은 학점은 회계사 시험 합격 사실이 상쇄시켜주었고 다행히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로스쿨로 진학했다. 주위에서는 아직 제도가 정착되지 않아서 그 곳을 가면 망한다고 실업자가 된다고 하던 시절이다.

    일이 지루해지면 다시 작성해야겠다. 내일 급한 자문이…

  • 4계절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찌는 듯한 더움과 매서운 추위 사이 그 ‘적당한’ 선선함이 무척이나 좋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서 그 사이 가을은 짧다. 올해도 그러하다. 내게 가을의 절정은 10월 2~4주다. 학생이던 시절은 늘 이때가 중간고사 시험 및 과제 제출 기간이었다. 때문에 ‘젊음’과 ‘가을’이 겹쳐 만드는 ‘낭만’을 온전히 만끽하지는 못했다. 사회에 나오니 ‘바쁜 것’은 ‘졸업 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밥벌이만 유지하면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다는 것은 차이.

    나이가 만 40에 가까워 지니, 젊은 날 잔디 밭에 누워 하늘을 보고 멍 때릴 수 있던 순간이 그 자체로 행복인데, 그 땐 뭘 더 바랬길래 마음이 그 당시 그 곳에 오롯이 머물 수 없었는지 가끔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후회가 느껴지곤 한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자 요즘은 일상의 작은 설렘에 무척이나 감사하고자 한다. 당연시 여기지도 말고, 지나치게 익숙해지지도 말자고 늘 다짐한다. 문득 가을 밤 익숙한 을지로와 명동 길을 걷다가 시원한 바람이 불 때, 그 바람에 감사할 여유가 있는 하루였음에 감사한다.

    일요일 오후 달리기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데 날씨가 꽤나 이제 시원함을 넘어 쌀쌀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광객들이 남산타워를 찍고 있더라. 덕분에 나도 한 컷 찍어보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지’, 무엇이 ‘변했는지’,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애당초 무덤까지 가져갈 확정된 답조차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달리기를 하다가 스무 살에 기숙사 2층 침대에서 CD 플레이어로 듣던 노래가 나오면 나이는 마흔을 향해 달리는데, 뇌와 마음은 어설프기 짝 없는 스무살로 돌아간다. 그리고 태어나서 스무살까지 살았던 시간만큼, 그 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다시 놀란다. 삶은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훌쩍 시간을 건너 뛰어 버리는 것인가.

    앞으로도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은 변하겠지만. 내게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잃을 것 없던’ 시절이 ‘지켜야 할 것’이 점점 많아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일 수도 있고,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고,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날 닮은 인생 2막을 사는 생명체일 수도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삶’은 ‘시작’과 ‘끝’이 오직 ‘한 번’뿐이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매일 밤 내일 아침 새로운 하루가 밝는다고 자위하며 죄책감과 실망감을 못본 채 하고 눈을 감지만, 그마저도 ‘끝’을 향해 ‘질주’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타성’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의 테두리 안에서 오직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만이 진짜다. 꾸며지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 온몸으로 직접 겪은 것만이 내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만이 내 ‘정체성’이라는 사실의 ‘선명함’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이 사실을 깊이 새기고 난 후부턴 절대 나 아닌 껍데기를 모방하며 시작과 끝이 한번 뿐인 이 여정을 낭비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 Can we honestly say that at every moment in life we always have a choice in what to do? I think not. There are times when we have to accept that having no choice is, itself, the only choice.

    Every action we choose comes at the cost of another action we don’t take. All of these choices play out along the continuum of time. As long as time never stops, neither do our decisions. In each moment, we are chasing something and, in exchange, giving up something else. And the sum of all those pursuits and sacrifices is my life — it is who I am.

    Those moments when it feels like I have no options are usually more complicated than they appear. If I look deeper, I find the alternatives were there — I simply, and consciously, let them go. The reason might be a burning ambition in my heart, or a sense of emptiness I needed to fill, or even out of love and sacrifice for my family.

    Whatever the decision, its true meaning can never be grasped except in retrospect. And even then, the meaning of that choice can change each time we revisit it. In that point, life is an endless gamble — a perpetual throw of the dice — where we never really know what our decisions mean.

    For this reason, I will not look back, whatever path I take. Instead, I will immerse myself in the present, convinced that this moment is the only portion of life I can fully possess. This moment is everything.

  • The Lawyer’s Life in Words

    By trade, I am a lawyer. For eleven years now, that has been the fact of the matter. In that time, I have waded through an ocean of text: countless legal statutes, judicial precedents, textbooks, briefs, and opinions, day after day. There was a unique misery to the day when the necessary text could not be found; a different, but no less potent, anguish accompanied the day when the words that had to be written refused to form.

    As a lawyer, I believe that the essence of my profession lies in taking abstract legal principles and transforming them into concrete reality through the printed word. This process carries with it two fundamental promises. One is the promise of language—our shared medium of communication. The other is the promise of law—the consensus among members of society that governs human relationships.

    From an evolutionary perspective, it is language—that mysterious, binding medium—that allowed humans to dominate the planet. In this light, the lawyer’s craft, so deeply rooted in the manipulation and mastery of this medium, seems to stand at the apex of a uniquely human characteristic. It is, I have often thought, a fascinating line of work.

    There is a particular, rarefied thrill when, after a fierce battle of arguments, a judge—a figure of intellectual authority—ultimately sides with my written words. There is a distinct pleasure in drafting a text that cuts cleanly through the complexities of facts, statutes, and regulations, driving straight to the core of the matter. In those fleeting moments, at least, I have felt a sense of relief, a quiet affirmation that I was right to choose this path, even amidst the punishing workload of a major law firm.

    Burnout and the Solace of Writing

    But lately I find myself growing weary—not just of reading and writing, but of the entire existence of a big-firm lawyer. The truth is that I’m essentially a highly paid worker, trading my time for money. Everything I do ends up distilled into a quarterly performance review measured in billable hours. There is the tension and anger that arise from the disparate levels of responsibility among those involved in a case. And there’s a tragic paradox: life is ultimately made of time, yet to become a successful lawyer one must be busy around the clock.

    It has been a very long time since I last felt a deep sense of happiness from writing as a lawyer. When I seek to comfort my exhausted heart, I turn not to the arid, barren pages of legal documents but to writing out the stories in my heart, in whatever way I can—just as I am doing now. It’s ironic: the pain I’ve endured from reading and writing is being sublimated back into writing.

    What remains certain is that words have power. They have resonance. And for that reason, I love to read and to write. The joy of discovering a magnificent sentence is akin to stumbling upon a piece of music that perfectly suits my taste while walking down the street. It is in anticipation of such small joys that I ordered four new essay collections online today.

    I hope that the coming autumn and winter will see me once again writing with fierce intensity as a lawyer.

  • Some Seasons of life arrive without knocking, yet rearrange the entire house.

    There were years when I wanted nothing more than to live inside each passing moment – to feel it with the full weight of my body, the far reach of my mind. Even if it became an unbroken struggle, one with no horizon in sight, I believed that to inhabit my life completely was to leave no space for regret.

    That conviction did not grow from youthful optimism. It came instead from a quieter, more unsettling truth: that much of what shape us – perhaps the most defining turns-uninvited, untouched by our will.

    And So I learned to care less about what might happen, and more about what I would make of the given: this slender thread of time, this body I carry, this restless mind. What would I do with them, and in what manner? I kept that question close, like a small stone in my pocket-warmed by the touch of my own hand-and I acted as though the answer mattered.

    The hours I shaped in that spirit now look back at me with a certain clarity: Then, That was my best. Whatever other roads may have existed, whatever choices might have been offered, I would still choose the life I have walked.

    Perhaps this was never certainty, but rather a private benediction-a quiet hand laid upon my own shoulder. I came to lean on it, especially on days when the outline of my life felt unfamiliar, almost foreign.

    And on such nights, when that small mercy slipped from reach, the absence of it pressed hard enough to keep sleep at a dist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