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계절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찌는 듯한 더움과 매서운 추위 사이 그 ‘적당한’ 선선함이 무척이나 좋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서 그 사이 가을은 짧다. 올해도 그러하다. 내게 가을의 절정은 10월 2~4주다. 학생이던 시절은 늘 이때가 중간고사 시험 및 과제 제출 기간이었다. 때문에 ‘젊음’과 ‘가을’이 겹쳐 만드는 ‘낭만’을 온전히 만끽하지는 못했다. 사회에 나오니 ‘바쁜 것’은 ‘졸업 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밥벌이만 유지하면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다는 것은 차이.
나이가 만 40에 가까워 지니, 젊은 날 잔디 밭에 누워 하늘을 보고 멍 때릴 수 있던 순간이 그 자체로 행복인데, 그 땐 뭘 더 바랬길래 마음이 그 당시 그 곳에 오롯이 머물 수 없었는지 가끔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후회가 느껴지곤 한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자 요즘은 일상의 작은 설렘에 무척이나 감사하고자 한다. 당연시 여기지도 말고, 지나치게 익숙해지지도 말자고 늘 다짐한다. 문득 가을 밤 익숙한 을지로와 명동 길을 걷다가 시원한 바람이 불 때, 그 바람에 감사할 여유가 있는 하루였음에 감사한다.
일요일 오후 달리기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데 날씨가 꽤나 이제 시원함을 넘어 쌀쌀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관광객들이 남산타워를 찍고 있더라. 덕분에 나도 한 컷 찍어보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지’, 무엇이 ‘변했는지’,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애당초 무덤까지 가져갈 확정된 답조차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달리기를 하다가 스무 살에 기숙사 2층 침대에서 CD 플레이어로 듣던 노래가 나오면 나이는 마흔을 향해 달리는데, 뇌와 마음은 어설프기 짝 없는 스무살로 돌아간다. 그리고 태어나서 스무살까지 살았던 시간만큼, 그 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에 다시 놀란다. 삶은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훌쩍 시간을 건너 뛰어 버리는 것인가.
앞으로도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은 변하겠지만. 내게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잃을 것 없던’ 시절이 ‘지켜야 할 것’이 점점 많아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일 수도 있고,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고,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날 닮은 인생 2막을 사는 생명체일 수도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삶’은 ‘시작’과 ‘끝’이 오직 ‘한 번’뿐이라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매일 밤 내일 아침 새로운 하루가 밝는다고 자위하며 죄책감과 실망감을 못본 채 하고 눈을 감지만, 그마저도 ‘끝’을 향해 ‘질주’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타성’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의 테두리 안에서 오직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만이 진짜다. 꾸며지지 않고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 온몸으로 직접 겪은 것만이 내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만이 내 ‘정체성’이라는 사실의 ‘선명함’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이 사실을 깊이 새기고 난 후부턴 절대 나 아닌 껍데기를 모방하며 시작과 끝이 한번 뿐인 이 여정을 낭비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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